제6회 - 병자호란 패배의 역사 삼전도비
the live 송파 TV
등록일 : 201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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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a> 반드시 아름다운 과거만이 역사는 아니겠죠. 부끄럽지만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그 날의 기억. ‘옛날 옛적에’ 오늘 시간은, 조선 후기 병자호란의 패배와 그 날의 치욕을 간직한 ‘삼전도비’ 의 역사 속으로 떠나봅니다.
Na.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편안한 산책로와 따뜻한 쉼터가 되어주고 있는 석촌호수. 예전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삼밭나루라고 불리었던 이곳은 한강의 물길이 닿는 곳으로, 여주와 충주 등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교통지 역할을 했었는데요. 그만큼 사람들의 왕래도 잦았던 이곳에, 처연한 모습의 한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병자호란 패배의 치욕적인 상징물. 사적 101호 삼전도비입니다.
anna> 단단한 거북받침돌 위에 높이 395cm, 너비 140cm로 세워진 거대한 이 비석의 정식 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 병자호란에서 승리한 청나라 태종이 자신의 공덕을 알리기 위해 세운 전승비이자, 송덕비인 것인데요. 병자호란의 패배는 조선시대의 2대 국치 중 하나로 기록될 만큼 치욕적인 역사로 남겨져 있습니다.
Na. 비석에는 청나라가 조선에 출병한 이유와 조선이 항복한 사실 등이 기록돼 있는데요. 주목할 점은 비석의 앞면에는 만주어와 몽골어가, 비석의 뒷면에는 한자가 새겨져 있어, 17세기 당시의 언어를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돼 주고 있다는 겁니다. 비석 바로 옆에 놓인 또 하나의 귀부도 눈에 띄는데요. 더 큰 비석을 세우길 원했던 청의 요구로 만들었던 것이라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삼전도비의 수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워지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는데요.
Na. 비석이 남긴 패배의 치욕도 모자라, 몇 번씩이나 땅 속에 묻히는 수난을 겪어야만 했던 삼전도비. 아마도.. 패배와 치욕의 아픔을 잊지 말아달라는 역사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요.
anna> 어쩌면, 그대로 사라져 버렸을지 모를 국난의 역사. 부정하고 감추려 한다고 해서 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역사가 주는 진정한 교훈이자,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가장 중요한 자세일테죠.